우리 집 거실 벽엔 사진이 두 개 걸려있다.
하나는 동훈이 백일기념으로
스튜디오에서 제일 저렴한 팩키지로 찍어서,
액자에 넣어 걸어 둔 사진.
다른 하나는,
나랑 원정이랑 동훈이랑 선유도 공원에가서
대나무 길 사이에서 찍은 사진.
스튜디오 사진은 잘 나왔다.
내가 찍은 사진은 약간 어둡게 나왔고,
그래서 컴퓨터로 밝게 보정하는 바람에
어두운 부분의 계조가 다소 깨져서,
그리 잘 나온 사진이란 소린 못듣는다.
또 원정이랑 동훈이 얼굴빛이 제 빛이 아니라
약간 밝게 나와서 창백해보이기까지 한다.
그래도 내 눈에 더 많이 들어오고,
자주 쳐다보게 되고,
오랫동안 보게 되는 사진은,
두 번째 사진이다.
이유는,
단지 내가 찍어서 그런 것 만은 아니다.
사진에 대해서 며칠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스튜디오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거길 찾아 간 기억.
넓은 스튜디오에 낯선 소품들.
이 아기, 저 아기가 입었음직한
갖가지 공주옷, 왕자옷.
사진사의 어설픈 재롱.
울지 않을까 촬영 내내 조마조마 했던 기억.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기고 불안해했던 원정이.
내가 선유도 공원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지난 해 휴가 마지막 날,
아쉬워하며 찾아갔던 선유도.
차를 멀찍이 세워놓고 한 참 걷던 기억.
그리고, 간이 매점에서 음료수 사먹고.
사람 많던 선유교를 넘을 때 좋아라 했던 원정이.
난간에 붙어 모델이 되었던 동훈이의 환한 웃음.
그리고 동훈이의 웃음을 구경하던 많은 사람들.
그리고 쑥스러웠던 기억.
사진이 잘 나올까 하는 걱정들.
그리고, 어두워 지기 전에 아쉬움을 남기며
집으로 돌아와야 했던 기억.
너무 오래 걸어서 피곤했던 기억.
주차하기 힘들어서 애먹었던 기억.
…
…
…
사진이란.
“영원”을 “찰나”에 담은 것.
사진은 정지된 영상이지만,
그 안에 추억된 것은 영원하다.
어쩌면 오래 된 사진일수록,
그 기억은 가물가물 해지기도 하지만,
그렇게 가물가물 해진 기억을
애써 돌이켜 보려 하는 것도 재미있다.
초등하교 운동회때 화단에서 뛰어내리던 사진이 있다.
그 날 뭘 먹었는지, 아마 김밥이었겠지.
어김없이 운동회를 같이 하시던 외할머니.
그리고 파랗고 하얗던 양면 모자.
청룡과 백호 점수판.
이렇게 사진에 담기지 않았지만
그냥 기억나는 것들이 있다.
물론, 화단에서 뛰어내리던 모습을 사진에 담던,
어머니의 모습도 기억난다.
빛이 바래도,
촛점이 좀 안맞아도,
구도가 엉성해도,
그런 사진이 훨씬 사진스럽다.
스튜디오의 화려한 배경지와 소품보다는,
내가 살던 집의,
낡은 의자와 촌스런 벽지라도,
그 배경이 더 좋다.
난 앞으로 누군가의 추억을 담아줄 수 있다면,
화려한 배경이 아닌,
그들의 삶속에서 순간을 담고 싶다.
그들의 집이 스튜디오요,
그들의 낡은 의자, 촌스런 벽지,
그리고 그 집에서
아침에 먹은 김치찌개 냄새를 맡아가며
사진을 찍어주고 싶다.
그들은 평소에 입던 옷을 입고,
아니 어쩌면 옷장에서 꺼낸, 아껴입던 옷을 입어도 좋다.
그게 그들의 옷이면 상관 없다.
..
그렇게 찍은 사진에,
땀나도록 열심히 셔터를 눌러준,
나에 대한 기억도 담겨 있다면,
눈물나도록 영광스러운 일 아닐까.
누군가에게,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도 추억된다는 것.
“그래, 이 사진. 그 때 한승이가 찍어주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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