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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교, 동성중.고등학교입니다.
1992년 봄에 졸업하고,.
처음으로 구석구석 밟아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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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서울에서 태어나신 선생께서는 일찍이 한학과 외국어, 농학 등을 공부하신 후, 1920년 도미하여 뉴욕 맨해튼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하셨다.

1931년 동성에 부임, 1934년부터 제3대 교장에 취임하시어 동성 발전을 위해 선생께서 헌신하신 17년간은 우리 동성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시기이다. 이 시기는 일제가 이 땅의 모든 교육 기관을 식민 통치의 도구로 삼기 위해 광분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이 어려운 시기에 동성이 명실상부한 민족 사학이자 가톨릭 교육의 전당으로서 그 위상을 확고히 할 수 있었던 것은 선생이 지닌 교육자로서의 확고한 신념과 인품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1947년 교장 퇴임 이후, 겨례의 부르심을 받은 선생께서는 유엔 총회에 한국 대표로 참석, 유엔으로 하여금 대한민국을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하게 하셨다. 뿐만 아니라, 6.25 발발 직후 유엔 안보리로 하여금 이를 즉각 공산 침략 행위로 인정케 하여, 유엔군을 신속하게 참전하게 함으로써 대한민국을 위기로부터 구해 내셨다. 선생께서는 제헌의회 국회의원, 유엔총회 한국 대표, 제2대 국무총리, 제4대 부통령, 제2공화국의 내각 수반(국무총리)등을 역임하셨다.

선생은 굳건한 신앙을 바탕으로 이 땅의 교육과 민주주의를 위하여 멸사봉공의 헌신적 인고로 평생을 바치셨다. 비록 선생의 육신은 우리 곁을 떠났으나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의 향기 속에는 주님과 겨례를 위한 선생의 혼백이 살아 숨쉬고 있다. 이제 선생의 탄신 백 주년을 맞이하여 우리 동성 교정에 선생의 흉상(胸像)을 모심으로써 그 드높은 공적과 정신을 영원히 기리고자 한다.

1999. 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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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의 탑]
‘믿는다… 그러므로 탓하지 않는다.’
우정의 탑에는 이러한 친구사이의 믿음이 새겨져있다.
사연의 주인공들은 고등학교 46회 졸업생인 백호열군과 유거선군.
이들은 1969년 당시 1학년 동급생이었다. 쉬는 시간에 서로 치며 장난을 하던 중 갑자기 백군이 쓰러졌고, 병원의 진단결과 장 파열이라는 중상이었다. 학생들과 학부모, 선생님들이 모두 놀란 사고였다. 학교 분위기도 뒤숭숭했다. 하지만 몸을 다친 백군과, 백군의 부모가 먼저 나섰다. 자라는 청소년 사이에 있을 수 있는 일이며 더욱이 이 아이들은 친구가 아니냐는 것이다. 그리고 수술비도 스스로 부담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백군을 다치게 한 유군의 부모는 자식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책임이 크다면서 용서를 구했다. 또 수술비를 부담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며 피해학생의 부모가 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양보를 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 백군과 유군, 두 부모의 마음에는 사람에 대한 믿음이 크게 자라났다. 또 이런 모습에 다른 학생들과 학부모, 선생님등 주위의 모든 이들이 감화를 받았고, 학교분위기도 순식간에 밝아졌다. 친구에 대한 우정, 남의 자식에 대한 애정, 청소년들에 대한 교육관, 세상을 사는 지혜는 한낱 불신의 사건으로 끝날 수도 있었던 일을 마음의 보물로 바꾸어 놓았다. 백군과 유군의 부모, 학교측은 이 일을 기념하고 모든 동성인들의 우정이 영원히 그러할 것을 염원하면서 우정의 탑을 세웠다.
제작은 서울대 미대 조소과의 송영수 교수가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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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02180101


안녕하세요. 동성고교 재학생입니다. 학교 홈피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 일요일 교내에서 사진기를 가지고 촬영하시던 분이시군요. 동아리방에 잠깐 나왔다가 뵌 것 같군요. 선배님으로서 모교사랑하시는 마음이 너무 보기에 좋습니다. 그럼 앞으로도 동성 많이 사랑해주세요.. 안녕히계세요.

20040202221617 / 윤종옥


greats

20040812112137 / 이형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