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2월 27일, 토요일, 오전 6시..
아내가 날 깨웠다.

“여보, 나 양수가 터졌나봐.”

잠결에 들린 아내의 목소리에 놀라 아내를 보니,
엉거주춤한 자세로 다소 놀란 표정.
아내의 발 밑엔 정체불명의 액체가 흘렀다.
많진 않았지만 느낌은 양수가 확실했다.

“병원가자.”

나의 서두름과 당황에 아내는 우선 병원에 전화를 해보겠다고 한다.
군대 5분대기 소대장의 동작보다 더 빠른 동작으로,
옷 챙겨입고 나갈준비 완료.
이렇게 서두른 나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이 아내는 여유있게 씻고 있었다.
병원은 통화중이었다.

아내가 다 씻고 나와서 화장대에 앉는다.
화장을 하려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리 바빠도 여자는 여자다.
거울 안보고 나갈 수 없었는지.
암튼, 난 병원으로 전화를 했고 신호가 울리자, 아내가 침실 전화를 받았다.

“양수가 터진것 같은데요…. 예…. 예.”
“뭐래!?”
“병원으로 오래.”
“얼른 가자.”
“씻고 가.”

아내가 내게 준 여유에, 그래, 내가 이렇게 당황해선 안되지.
나도 머리감고 샤워하고, 면도만 안했다.

거여동에서 병원으로 가는 동안, 난 아내의 손을 꼭 잡고갔다.
한 손으로 운전하는 연습은, 다 이 날을 위함이었는지.
해도 안 뜬 이른 새벽같은 아침, 그래도 부지런히 움직이는 자동차는 있었다.

다몽이를 낳기 전에도, 우린 운전할 때 항상 다몽이와 함께했다.
‘다몽아, 가자.’
하면, 적색 신호가 녹색으로 바뀌는게, 열에 여섯번은 그랬다.
무심코 지나치는 교차로에서 미처 다몽이와 함께 주문을 거는걸 잊어버려도 녹색 신호로 바뀌는 일이 종종 있었는데,
그럴때 우리 부부는 다몽이에게 감사의 말을 잊지 않았다.
‘다몽이가 엄마, 아빠 빨리가라고 불켜줬지~~?!”
– 이 말은 OST로, 억양 섞어가며 들어야 제맛이다.
– 내 아버지가 누나들과 내게 늘 걸던 주문의 억양. 평안도식 억양.

이 날,
다몽이의 기운이 세상 밖으로 조금씩 나오던 날,
송파구청 뒷길부터 강남 면허시험장 앞까지,
대여섯개의 신호등은 모두 다몽이가 켜 주었다.
강남 면허시험장앞에선 다급해진 내 마음을 적색 신호로 다스려주기도 하였다.

분만실에 도착한건 6시 50분.
난 한 시간 이상을 밖에서 기다렸다.
라마즈 분만 교육을 받은터라,
아내와 함께 진통시간, 분만순간을 함께 할 수 있는데,
이렇게 손도 못쓰고 앉아있는게 너무 답답했다.
마침 나온 간호사에게,

“서원정 산모는 이제 스케쥴이 어떻게 되요?”
“지금 준비하고 있구요, 조금 기다리시면 보호자를 부를거예요.”
“입원실준비 지금 해요?”
“아니, 아이 낳고 해도 돼요.”

잠시 후에 진통실에서 만난 아내는 링거를 맞고 있었다.
하나는 포도당쯤 되고, 다른 하나는 Oxy. 옥시크린이 아니라, 옥시토신.
내가 한 때 유전공학의 꿈으로 자칭 생물학에 관심이 많았을 때,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의 조화. 그리고 임신. 출산의 옥시토신.
그리고 여성의 주기를 호르몬의 분비와 함께 자궁벽의 두께를 그리는 그래프는 책 안보고도 줄줄 꿰였었다.
지금은 겨우 Oxy가 옥시크린이 아니란것 정도를 구별할 수준밖에 안되지만.

“촉진제 놓았어.”
“응.”

옥시토신은 정확하게 투여하기 위해서 이상한 기계를 거쳐나왔다.
엘리베이터에서 볼 수 있는 형광색 숫자, 44.(44로 기억된다.)
그리고 그 밑에 써 있는 단위 – ml/hr.
음, 한 시간에 44ml가 들어가는군. 참고로 44ml는 야쿠르트(이오 말고)량의 반정도.
나중엔 이 옥시토신이 한 시간에 160ml이상 투여되었다.
그리고 쿵닥쿵닥, 다몽이의 심장소리가 들린다. 1분에 120~160번.

아내의 자궁문은 1cm 열렸단다.
보통, 2~3cm정도 까지는 별 진통없이 열리고,
그 다음에 진통이 오든, 양수가 터지든 하여 분만준비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아내는 1cm에서 양수가 터져 분만준비에 일찍 들어갔다.
촉진제를 오전 8시에 투여하기 시작하여, 한 시간 후쯤부터 아내는 진통을 호소한다.
5분간격으로 40초가량 아프단다.
난 5분마다 아내의 허리를 문질러 주었다. 아내는 안타깝게도 1cm부터 진통의 맛을 보아야 했다.

운이 좋게도, 예전에 아내가 아파서 복강경 시술을 해준
장진범 선생님이 토요일 오후 분만실 당직선생님이시다.
그리고, 다몽이와 아내를 내내 지켜봐준 선생님도 장진범 선생님,
그리고 다몽이를 받아주신 선생님도 장진범 선생님.
남편 다음으로 인연이 깊은 사람이다.
장선생님이 오전에 분만실로 내려오셨다.

“얼마나 걸리나요?”
“들어오실 때 1cm였어요. 오늘 목표는 3cm로 합시다. 그리고 촉진제 끊고, 오늘 푹 자고, 내일 다시 촉진제 맞고 출산합시다.”
“예?”

휴~.
맘속에 짧은 한 숨과 함께 굳은 각오와 다짐을 한다.

계속되는 진통. 허리 문지르기.
아침겸 점심으로 한 끼 때우고, 배고픈줄도 모른다.
아내는 빠른 분만을 위해서, 엊그제 그렇게 열심히 집안일 해서 양수가 터졌을지도 모르는데,
또 나가서 앉아있고, 계속 돌아다닌다. 그리고 소변은 왜 그리 자주 보는지, 아마 12번도 더 봤나보다.
처음엔 매번 소변통을 버렸는데, 나중엔 두번 세번 모아서 버렸다.
그렇게 잦은 진통속에 대여섯시간이 흘렀다. 무척 지루했다.
난 진통이 없는, 5분도 채 안되는 짧은 시간을 틈타,
아내의 엉덩이에 이마를 대고 잠을 자기도 했다.
중간중간 체크를 하는데, 오후 2시가 넘어서자 3cm이 열렸다.
의사가 3cm이 목표라고 그랬는데, 이렇게 밤새 힘들게 지내야 하는건 아닌지,
걱정이 앞섰다. 오전진료를 마친 장선생님이 다시 내진을 했다.

“이대로 잘 하면 오늘 안넘기겠어요.”
“예~”

라마즈 교육때 필기한 노트를 뒤졌다.

아내에게,
“3cm이 열리고 출산까지, 길면 9시간 이상 걸린다는데, 그러면 오늘 밤 11시나 되어야 겠어.”
“응. 그래.”

아내가 대견스러웠다. 지금까지 5시간가량 진통을 했다.
앞으로 9시간 남았다고 해도, 더 큰 진통이 오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담담하다.
역시, 엄마는 위대하다.

3cm을 넘어서자 진통이 더 심해졌다. 중간 내진에서 4.5cm를 말해주었다.
아내는 이제 신음소리를 내면서 3분간격으로 1분가량 오는 진통을 견뎌야했다.
그렇게 두어시간. 아내는 힘들어하며 밑이 빠질것같은 느낌이라고 전해왔다.
간호사를 불렀다. 그리고 내진을 했다.

“7cm 열렸어요. 밖에서 들으니, 계속 소리를 내는데, 그럼 지쳐요.
자궁 입구도 부었어요. 소리내지 마시고 힘들면 아예 힘주기를 한 번 해봐요.”

그 후로 아내는 힘주기만 했다. 신음소리는 좀처럼 들리지 않았다.
암튼, 의사선생님의 말은 너무 잘듣는다. 그렇게 또 두시간 가량 힘주기를 했다.
10초가량 숨을 멈추고 아래로 힘을 주는데, 아내의 얼굴이 빨개졌다.
저러다가 어디 핏줄이라도 터질듯한 걱정에, 얼굴이 빨개졌다고, 그러다가 큰일나겠다고,
애 낳기 전에 아내에게 뭔 일 생길것 같아 무척 걱정되었다.
그러다가 선생님이,

“얼굴에 힘 빼요. 안그러면 얼굴 다 터져요.”

이 말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내의 얼굴이 하얗게 창백해졌다.
야속했다.
남편 말은 안듣고, 선생님 말은 쏙쏙 담아듣고.
결국, 그렇게 얼굴에 힘주기로 인해, 눈동자에 실핏줄이 터져 뻘게졌고, 눈두덩도 멍이 들었다.

아내가 힘을 주면 다몽이의 심장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힘이 빠져서 심호흡을 하면 다몽이의 심장소리가 조금씩 크게, 빠르게 들리기 시작했다.
힘주기 한 번 하고 심호흡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다몽이의 심장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결국 다몽이의 상태를 걱정한 의사는 Oxy를 했다.
여기서 Oxy는 옥시크린도, 옥시토신도 아닌 Oxygen – 산소이다.
호흡보조기까지 착용하고, 연신 힘을 주었다.
한 번에 힘 줄 생각으로 왠만한 진통은 의연하게 넘기고,
때가 왔을 때 한꺼번에 힘을 주었으면 더 좋았을뻔 했다.
그래도, 초산이라 경험이 없으니, 어쩌겠는가.
아내는 자기 손으로 다리를 잡고, 난 등을 받치고, 의사는 다리를 벌리면서 다몽이의 상태를 확인했다.
출산 자세나 방법, 개념은 여러가지 말이 많으나 뭐가 정답인지도 모르겠고,
정답이 있는건지도 모르겠고, 암튼 말이 많다.
아내도 고생을 했지만, 중요한 건 경험. 그래도 초산은 누구나 경험없이 맞이해야 하는 것이니,
자기의 몸 상태와 의사, 간호사와의 호흡, 남편과의 호흡 등 여러 조건이 서로 조화롭게 맞물려야 하겠다.
어떻게 해야 아이가 쉽게 나올 수 있는지에 대해서 자기의 몸에 대한 상식도 있어야 하고,
뭐 안다고 다 아는데로 되는 건 아니지만,
암튼 힘과 자신감만으로 되는 건 절대 아니리라.

그렇게 두시간가량의 힘든 힘주기와 진통끝에 분만장으로 옮겼고, 그리고 30분도 안되서 다몽이가 빛을 보았다.
“아들입니다. 이제 바로 탯줄 자르실거예요.”
너무 감격스러웠다. 질긴 생명줄 – 탯줄을 자르고,
아내의 얼굴에 내 얼굴을 묻었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간호사가 다몽이를 아내의 가슴에 올려놓고, 젖을 물렸지만,
다몽이가 너무 지쳤는지, 한 쪽 눈만 빼꼼이 떠 보일 뿐이었다.
그렇게 다몽이가 세상에 나왔다…
아내에게 너무 감사하다.
다몽이에게서 내 부모의 사랑도 크게 배웠다. 아니, 앞으로 더 배울것이다.
다몽이가 너무 대견스럽고 자랑스럽다.

오전 9시 ~ 오후 2시 : 전기. 3cm. 다섯시간.
오후 2시 ~ 오후 4시 30분 : 중기. 7~8cm. 두시간 반.
오후 4시 30분 ~ 오후 6시 이후 : 힘주기. 1시간 반 이상.
분만장 : 30분.

총 9시간 이상의 긴 산고끝에, 다몽이가 세상에 나왔다.
2003년 12월 27일, 토요일, 오후 6시 43분.

20031230150841


우와~
한승아..10년넘게 알아온 친구이지만 새록새록 다른 모습을 본다..
원래 아빠들은 이렇게 잘 알고 있는거니? 다른 아빠들한테서는 볼수 없었던 치밀함…
너의 섬세함에 찬사를 보낸다~~
추카추카..
다몽이두 한승이같은 아빠가 있음에 너무 행복할거야..
행복해라..셋 모두..^^
20031230163642 / 김수진


고생하셨어요………..

20031231185023 / 권순욱


산모한테 직접 들었던 것보다 훨씬 생생하고 자세한 출산기네요. “강남 면허시험장앞에선 다급해진 내 마음을 적색 신호로 다스려주기도 하였다.”<– 저는 이 부분이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다몽이와 아빠의 교감…! 다몽이도 우리 린이만큼^^; 좋은 아빠 훌륭한 엄마가 있어서 참 행복하겠구나~ 다몽아 세상에 나온 거 너무너무 축하해!!

20040103134935 / 린이엄마


막 울면서 읽었어요. 이제 곧 저도 아가가 나올텐데 미리 경험한것 같고 정말 우리가 사랑으로 맺어진 새생명을 얻는다는거 정말 감사하고 축복받을 일인거 같아요. 그만큼 댓가도 필요한거 같구요.
우리 다몽인 좋겠어요 사랑이 가득한 부모님 만나서 항상 평안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래요 ^^
20040103150049 / 은재엄마


정말 감동적이네요—울 신랑이 이걸 읽어보고 느끼는 바가 있어야 할텐데—모유수유도 성공적으로 하는것 같아서 정말 다행이구여—건강하고 이쁘게 키우세요—

20040105113128 / 강숙영


이제야 들어와 봅니다. 열흘 전 일인데 언제 그런 일이 있었나 싶네요. 출산을 앞둔 토여 배부대 힘내시고요 마지막까지 운동 열심히 하시고… 글구 수진아~ 오랜만이야 지난 모임때 꼭 가고 싶었는데,아니 난 충분히 갈 수 있는데 주변서 도와주질 않아서… 여기서라도 만나니 반갑고 좋은 일 가득한 한 해 되어야 해 .

20040106144229 / 서원정